Avram Noam Chomsky was born December 7, 1928 in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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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ram Noam Chomsky was born December 7, 1928 in Philadelphia.
His father William was a famous Hebrew scholar and Noam spent time on a kibbutz in his early twenties.
The father of three children, he lost his wife Carol in 2008, after almost sixty years of marriage.
아브라 노암 촘스키는 1928년 12월 7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은 유명한 히브리어 학자였고 노암은 12살까지 키부츠에서 지냈다.
세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2008년 60년을 함께한 그의 아내 캐롤을 떠나보냈다.

Since 1955 he’s taught philosophy and linguistics— a field his theories have revolutionized— at MIT, where he became a full professor at the age of 32. In addition to his paradigm-shifting linguistic theories, he’s written many books on political issues and has received countless honors and awards (including 37 honorary degrees).
A nonstop activist with a relentless lecture schedule, he does more than any three normal people, but feels he’s never doing enough,
1955년 이래, 32세에 정교수가 되고 그의 연구 이론이 혁신을 이룬 MIT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가르쳐왔다.
혁신적인 그의 언어학 이론들 뿐만아니라, 그는 많은 정치 관련 저서를 집필하고 37개의 명예학위를 포함 셀 수 없는 영애와 상을 받았다.
왕성한 활동가이면서도 보통 세사람 이상의 빡빡한 강의 스케쥴을 소화하는 그는 지치는 기색이라곤 없다.

Chomsky is an electrifying speaker, and that’s due solely to what he says, not to the unpretentious, straightforward way in which he says it (he consciously avoids rhetorical flourishes). Sharp as a razor in debate but warm and amiable in conversation, he’s both the most moral and the most knowledgable person I’ve ever met.
촘스키는 탁월한 연설가인데, 그의 말을 들어보면 순전히 의도적으로 미사여구나 어려운 수식을 피하고 꾸밈없이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게 말하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날카로운 논객이지만 대화를 할 때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내가 만난 이들 중에 가장 윤리적이며 지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I hope he lives to be 100. You should too. The world will be an emptier, lonelier and less just place without him.
Arthur Naiman.
나는 그가 100세가 되도록 살기를 원한다. 꼭 그래야 한다. 그가 없는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허하며 외로운 곳이 될 것이다.
저자 네이먼.

Avram Noam Chomsky was born December 7, 1928 in Philadelphia.
아브라 아브람 노암 촘스키는 1928년 12월 7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His father William was a famous Hebrew scholar and Noam spent time on a kibbutz in his early twenties.
그의 아버지 윌리엄은 유명한 히브리어 학자였고 노암은 12살까지 20대 초반에 키부츠에서 지냈다.
 
Since 1955 he’s taught philosophy and linguistics— a field his theories have revolutionized— at MIT, where he became a full professor at the age of 32.
1955년 이래, 32세에 정교수가 되고 그의 연구 이론이 혁신을 이룬 MIT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가르쳐왔다.
촘스키는 1955년부터 MIT 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고, 언어학은 촘스키의 이론으로 혁신이 일어난 분야이다. 촘스키는 32세에 MIT에서 정교수가 되었다.
 
In addition to his paradigm-shifting linguistic theories, he’s written many books on political issues and has received countless honors and awards (including 37 honorary degrees).
촘스키는 혁신적인 그의 언어학 이론들 뿐만아니라, 그는 많은 정치 관련 저서를 집필하고 37개의 명예학위를 포함 셀 수 없는 영애영예(榮譽)와 상을 받았다.
 
A nonstop activist with a relentless lecture schedule, he does more than any three normal people, but feels he’s never doing enough,
왕성한 활동가이면서도 보통 세사람 이상의 빡빡한 강의 스케쥴을 소화하는 그는 지치는 기색이라곤 없다.
빡빡한 강의 스케쥴을 가진 왕성한 활동가인 촘스키는 평범한 세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늘 그 이상을 소화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원문에 enough 다음에 comma(,)가 사용된 것이 오류로 보입니다. Period(.)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Chomsky is an electrifying speaker, and that’s due solely to what he says, not to the unpretentious, straightforward way in which he says it (he consciously avoids rhetorical flourishes).
촘스키는 탁월한 연설가인데, 그의 말을 들어보면 순전히 의도적으로 미사여구나 어려운 수식을 피하고 꾸밈없이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게 말하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탁월한 연설가이다. 그 이유는 촘스키가 말하는 연설의 내용 때문이지 촘스키의 꾸밈없고 직설적인 연설 방법 때문이 아니다. 촘스키는 의식적으로 미사여구나 어려운 수식어를 피한다.
 
Sharp as a razor in debate but warm and amiable in conversation, he’s both the most moral and the most knowledgable person I’ve ever met.
촘스키는 토론에서 날카로운 논객이지만 대화를 할 때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넘치며 내가 만난 이들 중에 가장 윤리적이며 지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I hope he lives to be 100. You should too. The world will be an emptier, lonelier and less just place without him.
나는 그가 100세가 되도록 살기를 원한다. 꼭 그래야 한다. 우리 모두 촘스키가 오래 살기를 바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없는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허하며 외로운외롭고 정의가 사라진 곳이 될 것이다.
 
Arthur Naiman.
저자 아더 네이먼.
 
* 영문을 해석하면서 영어의 어순을 따르는 것이 바로 '번역체' 탄생의 원인입니다. 영어를 우리말에 상당하는 표현과 어순으로 옮기는 것에 중점을 두시기 바랍니다. "I found myself feeling happier than ever."라는 문장을 "나는 내자신이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해진 것을 발견했다."라고 번역한 소설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하게 느꼈다."라고 했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말에 번역체가 많이 혼용이 되고, 거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개인적으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I'll personally do it." 이라는 문장을 "내가 개인적으로 할게."라는 식의 번역체가 수도 없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내가 '직접' 할게."라고 해야 올바른 의미의 전달입니다. 하다못해 국립국어원에서 조차 '개인적으로'라는 말의 표현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고 올바른 뜻을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His father William was a famous Hebrew scholar and Noam spent time on a kibbutz in his early twenties.
... 20대 초반에 키부츠에서 지냈다.
-> 20대 초반 즈음에만 키부츠에서 지냈다를 표현한 것이지요? 전치사 in 은 전후 연속성 없이 한정된 시점을 표시하나요?
-> '~까지 지냈다' 로 표현할 경우 to his early twenties 를 사용해서 표현이 되나요?

, not to the unpretentious, straightforward way in which he says it
-> 동사가 없이 완전한 문장은 아닌 것 같지만, 의미가 전달되는데요,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나요?

1. in July (7월에), in 2015 (2015년에), in the 1980s (1980년대에), in one's 20s (20대 시절에) 등에 사용된 in 의 '시간'에 해당하는 용법을 사전에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까지"에는 by, until 등의 전치사를 주로 사용합니다. 전치사 하나로 표현하는 방식보다는 어떤 동사어떤 방법의 표현어떤 시제를 선택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치사의 용법이 결정됩니다. in, by, until 등 전치사의 기본 용법에 관한 것은 사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Chomsky is an electrifying speaker, and that’s due solely to what he says, not to the unpretentious, straightforward way in which he says it (he consciously avoids rhetorical flourishes).
문법 용어로는 "공통관계"라고 하고 공통된 부분을 생략하는 경우를 지칭합니다. 위의 예문을 간단하게 바꾸어 쓰면 That's due to A, not to B. 입니다. "A 때문이지 B 때문은 아니다" 생략된 부분을 굳이 풀어서 다시 쓴다면 "That's due to A, and that is not due to B." 정도가 되겠고, 공통이 되는 주어/동사/due 를 생략한 경우입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